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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두환 씨는 12.12 군사 반란을 시작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했습니다.

퇴임 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 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수감 기간은 2년에 그쳤습니다.

박혜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전두환 씨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79년입니다.

국군보안사령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수사를 맡은 뒤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켜 순식간에 정국을 장악합니다.

[전두환/1979년 12·12 직후 보안사 송년회 : "여기 정의감에 불타는 모든 서울 주변에 있는 지휘관들이 즉각 본 사령관을 지지해주고, 또 임무 수행에 뒷받침이 돼줬기 때문에…."]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던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았고, 광주에는 공수 부대를 투입해,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습니다.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한 수순이었습니다.

[전두환/1980년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이 국가적 일대 전환기에 대통령의 책무를 맡게 된 데 대하여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전두환 씨는 집권 기간 학원자율화나 통행금지 폐지같은 유화책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이른바 '3저 호황' 덕에 경제 성적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 치사, 이한열 사망, 삼청교육대, 언론사 통폐합 등 본질은 철권 통치였습니다.

군사 정권의 안정적인 연장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1987년 ‘4·13 호헌 조치’ : "본인은 온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된 이 헌법을 끝까지 준수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결국 퇴임 뒤 5.18과 12.12, 수천 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1997년, 수감 2년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전두환/1997년 12월 석방 :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 씨가 다시 뉴스에 등장한 건 2019년, 회고록에서 5.18 관련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다시 재판정에 서야 했습니다.

[전두환/2019년 3월 광주 :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 이거 왜 이래! (광주 시민들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세요?)"]

전 씨는 재판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박혜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