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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언론이 사회적 갈등을 다룰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갈등의 원인이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는 겁니다.

그래야만 당국이나 이해관계자는 물론 국민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그것이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른바 '희망버스' 시위 보도는 우리 언론의 갈등 보도를 진단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과연 우리 언론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구경하 기자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구 기자, 이른바 ‘희망버스’는 문화제 형식의 비폭력 시위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달 말 울산에서는 폭력 사태가 빚어졌어요?

<답변> 네, 울산 현대자동차 앞에서 희망버스 집회가 열린 건 세 번째였는데요,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면서 언론 보도가 폭력행위에 집중됐습니다.

<리포트>

정규직 전환 실시하라!

전국에서 노동자와 대학생, 시민 3천여 명을 태운 버스 60여 대가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열달 가까이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을 응원하는 이른바 ‘희망버스’입니다.

희망버스 측은 현대자동차에 경영진 면담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집회 예정 장소를 컨테이너로 봉쇄했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은 철제 울타리를 넘어뜨려 공장 진입을 시도했고, 사측이 고용한 용역과 직원이 이를 저지하면서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집회 참가자와 사측이 각각 80여 명씩 다쳤고 경찰도 11명이 부상했습니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도 신분을 밝혔지만 폭행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부 언론들은 거친 언어로 이날 시위의 폭력성을 보도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광장 : "주말 현대차 울산공장을 무법천지로 만든 폭력시위"

한국경제(7.22) : "울산 쇠파이프 난동, 모조리 체포해 법적 책임 물어라"

동아일보(7.23) : "죽봉과 쇠파이프, 폭력만 싣고 온 ‘절망버스’"

<질문> 폭력을 행사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합니다. 그런데 언론의 초점은 희망버스 참가자 한 쪽의 폭력사태에 맞춰진 것 같아요.

<답변> 네, 현대자동차 사측과 희망버스 참가자 모두 폭행을 당했다며 상대방을 고발한 상태입니다.

경찰의 수사 역시 양측 모두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희망버스 측의 폭력만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리포트>

조선일보는 집회 다음날 희망버스 참가자의 폭력장면을 포착한 사진을 1면에 실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시위꾼’, ‘희망버스’는 ‘폭력버스’, 대나무는 ‘죽봉’으로 표현했습니다.

사건 다음날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던 중앙일보는 이튿날 희망버스 집회를 조직적 폭력으로 묘사했습니다.

중앙일보(7.23) : "만장을 뗀 기수단은 죽봉 시위대로 돌변했다. 이들 죽봉부대는 순간적으로 대열을 갖췄다. 일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가 가세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에 대해 희망버스 측은 현장에 대나무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공격용이 아니라 만장을 위한 깃대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창근/희망버스 기획단 대변인 지난 7월 15일 현대차 아산 공장의 비정규직 사무장으로 일했던 박정식이란 분이 자결을 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분을 위한 만장용으로 대나무를 준비했던 것이고. 그것이 일부 참가자들이 과격해지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현대자동차 측은 희망버스 시위에 쇠파이프가 등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MBC 뉴스투데이 : “또다시 죽창과 쇠파이프로 집단 폭력을 행사해 80여 명의 관리자가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최대주주가 현대자동차인 한국경제 역시 시위대 대부분이 쇠파이프를 든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쇠파이프가 있었다고 보도한 언론사들의 사진과 영상에서, 실제 쇠파이프가 있는 모습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한성호(현대자동차 정책홍보팀장) : "쇠파이프 부분에 대해서는 죽봉처럼 사전에 준비하거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게 목격된 걸로 확인이 됩니다. 희망버스 측은 참가자들 쪽에 쇠파이프는 아예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희망버스 측은 또, 현대자동차 사측에서도 미리 준비한 곤봉과 대나무, 낫 등을 이용해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며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인터뷰>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 : "이와 같은 폭력과 희생에 대해 언론이 언급을 피하고 오로지 시위자들의 행동만 초점을 맞춘 것은 편파보도의 교과서적인 사례가 되지 않을까."

<질문>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보도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인데, 언론 보도를 보면, 갈등의 근본 원인이나 맥락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고, 충돌이 빚어진 원인에 입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답변> 이번 사건이 일어난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은 비정규직의 불법 파견 문제를 두고 10년째 갈등이 빚어진 곳입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파악하려면 언론이 종합적인 배경을 짚어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리포트>

현대자동차 앞 송전탑 위에서 고공 농성중인 최병승 씨는 7년에 걸친 소송 끝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지난 2010년과 2012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전환이 늦어지자, 지난해 10월 비정규직 7천여 명 전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현대자동차 측은 대법원 판결은 최 씨 1명에 대한 판결일 뿐이라며 대승적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백승권(현대자동차 홍보팀장) : "사내하청 근로자를 대상으로 3500명 신규채용을 2016년까지 단게별로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고공 농성에 대해 언론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극단적인 시위 방식은 갈등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는 겁니다.

한국경제(7.23) : [공권력 뒷짐에 폭력 되풀이] 노동자들이 철탑, 크레인 등에 올라가 장기 고공농성을 벌이는 행위는 한국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고공 농성 등 극단적 선택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절박함도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비정규직은 법적 교섭권이 없어 정부와 사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아도 강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 김종진(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대표성이나 조직력을 갖추지 못하고 취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수단 중에 하나가, 과격하고 고공, 분신, 단식 이런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대화 당사자인 경영계가 해당 비정규직 노동자들하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죠.“

희망버스를 통한 시민 참여에 대해서도 노사는 저마다 엇갈린 평가를 내놓습니다.

<인터뷰> 한성호(현대자동차 정책홍보팀장) : "희망버스를 주관했던 그들은 외부인들입니다. 협상 대상도 아니고요. 그들은 냉정히 말해서 면담 자격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외부 세력이지, 저희들하고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분들 아니에요."

<인터뷰>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 "몸을 죽여가며 투쟁을 해도 제풀에 지칠 거라고 해서 교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알아서 내려오겠지 (하는 상황에서) 그걸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사람들이 개입하는 것은 한 사회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 "폭력이 답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만약 그렇게 접근한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폭력이 원치 않게 유발됐을까 하는 질문 도출이 가능하죠. "

<질문> 대법원에서 승소한 노동자가 판결 이행을 요구하며 다시 고공농성을 하는 상황은 결국 우리사회가 제도적인 갈등 조정에 실패했다는 것 아닙니까. 언론의 책임도 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현대자동차의 문제는 불법 파견에 대해 처음으로 법원이 판단을 내린 사례이기 때문에 앞으로 비슷한 사건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판결 당시에 집중됐을 뿐, 기업이 판결을 실제로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리포트>

<녹취> SBS 뉴스8 (2010.7.26.) : "사내하청 근로자도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 씨와 같은 사내 하청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20% 수준. 70만 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2010년 대법원 판결 당시 언론은 판결의 사회적 파장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불법 파견 문제는 이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두차례나 고발당했지만 검찰은 3년째 고발인 조사조차 안했는데도 언론은 관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대자동차에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경고성 발언을 했지만 보도한 언론은 단 두곳에 그쳤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법원 판결을 이행하도록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도, 이를 감시할 언론도 모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랐습니다.

<인터뷰> 김종진(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노동부가 혹은 정부가 판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집행해야 될 역할이 있는데 사실 방기한 측면이 있습니다."

<인터뷰> 이창근 : "지금도 철탑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가 몇 명 맞았느니 이건 오히려 소모적일 수 있다. 처벌에 대해서 저희들은 피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법의 이름으로 현대차, 즉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행하지 않고 있는 그쪽 사람들에 대한 처벌도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대화와 제도를 통해 사회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조정되도록 돕는 것은 언론의 역할입니다.

10년간 법정 다툼이 끝난 뒤에도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결국 폭력으로 분출된 희망버스 사태는 우리 언론이 어디에 있었는지 되묻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