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기소 후 참고인 검찰 조사 사실상 금지…“증거 채택 안돼”_집이 카지노에 빠졌다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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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재판이 시작된 후 검찰이 특별한 사정 없이 참고인을 소환해 만든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조서나 증언에 대해선 사실상 증거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2심의 유죄 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원심에 돌려보냈다고 오늘(23일) 밝혔습니다.

앞서 A 씨는 양재동 화물터미널 복합개발사업, 이른바 '파이시티' 사업 시행사 대표 이 모 씨에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접근, 이 씨로부터 사업 인허가 청탁비용 명목으로 합계 5억5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특가법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심에선 A 씨를 최 전 위원장에게 갈 돈의 '단순 전달자'로 봐야 한다며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2심에서 '사업 시행사 대표 이 씨를 증인 신청 예정'이라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후, 이 씨를 2심 첫 공판기일이 열리기 하루 전 참고인으로 소환해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사는 이 씨를 증인으로 출석시킬 것이란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검사는 이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고, 공판정에 출석한 이 씨는 검찰에서의 참고인 진술조서와 동일한 취지의 증언을 했습니다.

A씨가 시행사 대표로부터 받은 돈을 최 씨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 로비 명목으로 받은 것이었는지를 판단할 증거, 즉 △검찰이 항소심 이후 작성한 이 씨의 참고인 진술조서와 △동일한 취지의 법정 증언 두 가지의 증거를 인정할 것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이 씨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고 봤지만, 이 씨의 법정 증언은 증거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고법은 2007년 12월 대선 전·후로 시기를 구분해 대선 이후에는 A씨가 최 전 위원장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로비 명목으로 4억 원을 받은 것이라는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 추징금 4억 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씨의 진술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고, 이 씨의 법정 증언은 증거로 쓸 수 있다'는 판단 자체는 2심과 동일했지만, 이 씨의 "법정 증언의 신빙성"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A씨를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대법원은 "제1심에서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어 검사가 항소한 후, 수사기관이 항소심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사기관에 소환하여 작성한 진술조서(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참고인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조서가 말한 대로 작성됐다고 증언하고, 피고인 측에 반대신문의 기회가 부여됐다 하더라도 절대로 써선 안 되는 증거라는 겁니다.

대법원은 만약 이를 허용하면 피고인과 대등한 당사자의 지위에 있는 검사가 수사기관으로서의 권한을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법정 밖에서 유리한 증거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되어, 당사자주의·공판중심주의·직접심리주의에 반하고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대법원은 이미 '증언을 마친 증인'을 검사가 소환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을 담은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것에 대해선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봐 왔는데, 이 사건에선 한 번도 재판정에 나오지 않았던 참고인(증인)을 상대로도 검찰이 기소 이후 조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밝힌 겁니다.

특히 대법원은 참고인 진술조서의 취지와 동일한 이 씨의 증언 역시 수사기관의 영향을 받아 이 사건 공소사실에 맞추기 위하여 진술을 변경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 씨는 이전의 검찰 조사에선 '현금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2심에 와 검찰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와 증언에선 '계좌로 송금했다'는 등으로 모순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참고인이 검사의 신청에 따라 증인이 되어 법정에서 그 진술조서와 같은 취지로 한 진술(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신빙성(증명력)은 증인신문 전 수사기관에서 조사하고 진술조서를 작성한 경위, 그것이 그 후 참고인의 법정 진술에 영향을 미쳤을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소 후 검찰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조서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참고인이 증인으로 출석해 진술조서와 동일한 취지의 내용을 담은 증언의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취지를 피할 수 있단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같은 대법원의 판례가 새로이 정립됨에 따라, 검찰이 기소 후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해 재판에 증거로 내는 일은 사실상 막히게 됐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