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위론 그친 문 대통령 ‘협치’…강기정 전 수석 “배수진 치고 대화했어야”_지리적 위치로 돈을 버는 방법_krvip

당위론 그친 문 대통령 ‘협치’…강기정 전 수석 “배수진 치고 대화했어야”_근육량을 늘리는 데 가장 좋은 음식_krvip


문재인 대통령은 "가장 큰 실패는 협치의 실패였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7월 국회 개원 연설에서다. 대통령의 고백은 여기까지였다. 어떻게 야당을 설득해 협치를 실천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협치를 자주 말했지만, 당위론에 그칠 때가 많았다. '여야정 국정협의체를 복원하자'는 제안의 반복이었다.

지난 8월 청와대에서 나온 강기정 전 정무수석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다. 청와대의 협치 노력을 냉정하게 평가해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야당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실천적 고민을 했는지 듣고 싶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을 대신해 야당과 관계를 맺는다. 그는 협치 최전선에서 1년 8개월을 보냈다. 문재인 청와대 최장수 정무수석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청와대 인근의 한 식당에서 1시간 20여 분 동안 이뤄졌다. 그는 예민한 질문에는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답변 취지를 살려 주제별로 구성했다.

■ "야당과 딜 없었다...배수진 치고 대화했어야"

문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 틀로 강조해온 것이 여야정 국정협의체다. 2018년 11월 첫 회의 이후 다시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강 전 수석은 정무수석 재임 기간 "두 번 열린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여야 정당 대표, 올해 5월 여야 원내대표와의 만남도 그 틀의 연속선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두 번의 만남, 어떻게 평가하나?
"사람의 습성이 만나다 보면 국민들 눈도 있고 하니, 뭔가 자꾸 합의하려 한다. 정례적인 만남이 반드시 있다 보면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 제 생각이다. 아마 대통령도 그럴 것이다."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했다. 청와대가 야당을 끌어내기 위해 양보한 것이 있느냐고 야당은 묻는다.
"2009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정세균 대표를 모실 때인데, 박희태, 정세균, 이명박 세 분이 만났다. 한-일 통화스왑 문제가 걸려 있을 때인데, 그때 저희도 조건 없이 협조를 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뭐냐는 문제를 따지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만나다 보면 요구가 있고, 요구가 있다 보면 '딜'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 번도 이 딜을 해본 적이 없다."

-딜이란 게 '주고받기'를 말하나?
"그렇다."

강 전 수석은 '야당에 양보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박도 하지 않았다. "대세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국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이 없다면 주고받는 것이 맞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불쑥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정국'을 언급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 4당과 4+1협의체를 만들어,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 설립 법안 등의 패스스트랙 지정을 시도했다. 여야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수십 명이 고소 고발됐다. 정무수석으로서 당시 사태를 지켜만 봤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도저히 정국을 이렇게 끌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민주당 이원욱, 한국당 김재원과 대화를 했다. (여야의) 다른 채널이 대화가 안 되니까. 아주 구체적인 얘기가 주거니 받거니 됐었다." "그때는 공수처를 언제까지 만든다는 것도 합의가 다 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야당에서 세 사람의 합의안을 안 받았나?
"아니다. 꼭 그렇지도 않다. 그때는 4+1협의체의 진도가 너무 나가 있어서, 이것을 한다는 것은 4+1협의체를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타이밍을 잃어버렸다."

그는 세 사람이 더 일찍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당시 여야의 대화가 "조금 겉돌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협치의 요건으로 "협상자가 타협 가능한 협상안을 내고 그걸 관철하는 의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책임 있게, 자기의 배수진을 치고 대화를 했어야 했는데, '때가 되면 어떻게 되겠지' '설마' 이런 거 있지 않나.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대화를 가져야 하는데 대화 테이블에 앉을 때 '망하기야 하겠어' '깨지기야 하겠어' 그러다가 패스트트랙 가는 것이다."

2019년 10월 14일 조국 법무 장관이 사의를 밝힌 뒤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만나고 나오는 강기정 정무수석
■ "조국 임명, 대통령 사과하는 아픔 있었지만, 그것도 책임"

인사를 둘러싼 야당과의 갈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과 8월 두 차례 중폭 이상의 개각을 단행했다. 이후 장관 내정->국회 청문회->야당 반대->임명 강행->장외 투쟁의 패턴이 반복됐다. 특히 8월 조국 법무 장관 인사 때는 광화문 대 서초동으로 나라가 쪼개지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조국 카드를 썼을 때, 협치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충분히 예견됐다. 정무수석으로서 어떤 의견이었나?
"야당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너무 침해했다. 조국 장관의 인사 문제는 야당을 넘어 검찰총장까지 인사권을 침해했다." "검찰총장이 법무장관 인사권을 침해할 수 없듯이 야당도 청문회 법에 의한 것 이상으로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할 수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좋은 인사를 추천할 수도 있고, 흠결 있는 인사를 추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법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우선 인사권을 존중해줘야 한다."

-'존중'의 의미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인사를) 할 때도 책임은 대통령 책임이고, 그래서 많은 지지율 하락도 있었고, 대통령이 사과하는 아픔도 있지 않았는가. 그것도 책임이라는 것이다."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면 무조건 대통령은 수용해야 하나? 그건 아니라는 거다. 그 지점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인정하고, 책임을 묻고, 이게 맞는 것 아닌가 싶다."

-야당이 동의하는 장관을 써야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지 않은가?
"(장관은) 국회의 표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모든 장관을 표결해야겠다고 한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강 전 수석은 "장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야당이 해임건의안이나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된다"고 했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탄핵소추를 추진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마저도 민심"이라고 못 박았다.

■ "문 대통령, 초기엔 적폐청산, 나중엔 개혁에 방점"

강 전 수석은 청와대 참모진 인사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인사권'이라는 원칙론을 고수했다. <청와대 정부>를 쓴 박상훈 정치발전소 소장은 "대통령비서실이라는 곳이 정치권의 다양한 의견이 고려되거나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통령 1인을 위한 조직이 돼버렸다"고 비판한다. 박 소장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 민정계 인사인 김중권 변호사와 보수로 분류되던 김우식 전 연세대 총장을 각각 기용하며, '탕평 인사'의 전통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전통은 이명박 전 대통령 때부터 끊겼고, 현 청와대에서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 전 수석은 "대통령의 보좌진을 어떻게 쓸 건가는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지, 과거와 비교해 평가할 수 없는 문제"라고 전제한 뒤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초기에는 적폐청산, 나중에는 개혁. 권력기관 개혁, 경제의 개혁, 이런 개혁에 방점을 두기 때문에 아무래도 구성원을 그렇게 구성한 것 같다. 문 대통령이 3선 전병헌 전 의원과 저, 4선 최재성 전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두는 것은 국회하고 더 책임 있게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통령이 칼라가 비슷한 사람을 썼냐, 안 썼느냐만을 보지 말고 얼마나 국회와의 협치에 의지가 있었는가를 좀 봐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5월 28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문 대통령-민주·통합 원내대표 오찬 회동
■ 제도화 빠진 대화의 한계…"권한 나눠야 협치 가능"

강 전 수석은 스스로 협치 노력을 점수로 매겨달라는 질문에 A~E 중 B라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하고는 달리, 진짜 많이 만나고 대화 많이 했다. 계파별로도 다 만났고. 예를 들면 김무성 계보, 돌아가신 정두언 계보, 우리 동기들.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황교안 전 대표 쪽 라인. 그것하고는 조금 다른 김재원 라인..."

지난 5월 국민의힘 새 원내사령탑이 된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이런 제안도 했다고 한다.

"늘 야당 분들한테 '정권을 잡는 시간은 아직 다가오지 않고 있다. 우리의 시간을 좀 갖자. 점진적 변화의 시간을 좀 갖고, 권력 투쟁의 시간은 내년으로 가자'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에게도 '내년 4월부터나 시작하자, 우리도 그렇게 준비할게, 어쩌면 지금은 김태년, 주호영 두 사람이 결심하면 우리 정치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라고 했다. 나 같으면 그런 개인적 욕망이 있겠다. 그걸 위해서 당내에서 좀 싸워봐라."

-왜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가?
"총선 전에도 안 되고 대선 전에도 안 된다고 본다. 5년 중에 딱 지금 시기, 지금부터 내년 2월 국회까지는 민심을 향한 상생의 대타협의 시기다. 나는 이걸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주 원내대표의 반응은?
"개인적으로 공감을 하지만, 당내 사정이 복잡하다는 것 아니겠나. 당을 설득하는 노력에 주호영 원내대표가 실패한 것 아닌가."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도 소리치며 싸운 건 "표피적인 것"이고, "여러 차례의 실속 있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대화가 있었다"고 했다.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 문제를 예로 들었다.

"'판문점 선언 비준안' 동의 문제는 (한국)당의 정체성 하고도 관계돼 있지만, 나경원 전 대표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판문점 선언 비준에 동의하면) '역사 속에 남을 공이 될 수 있다. 야당이 그동안 북한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고 조건부로 문을 열자고,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 않나. 지금 그 성과로 판문점 선언이 이루어졌는데, 이걸 당신 것으로 가져가라."

그러나 야당과의 대화는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도화되지 않은 협치, 즉 정무수석과 야당 원내대표의 개인적 대화에 의존하는 협치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와 '양당제'라는 우리 정치 구조는 좀처럼 협치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강 전 수석도 그 한계를 절감한 듯 보였다. 권한을 제도적으로 나누지 않는 한 협치가 쉽지 않을 거라고 봤다. 의회에 예산 편성권과 행정부 회계 감사 권한이 있는 미국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다른 형태의 권력 구조(의원내각제)라든가, 또는 예산 편성권이나 장관 임명권, 감사원의 감사권을 국회 권한으로 전환해 내면서 권력을 나누지 않으면, 권력과 권한을 제도적으로 나누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모든 싸움의 시작과 끝은 정권을 잡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협치 내각'에 대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했던 '당 대 당의 대연정'이나 '독일식 연합정부'의 구조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도 부담된다며, "사실상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